(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만 25세 이전에 갑자기 생기는 1형 당뇨병(일명 소아 당뇨병)은 현재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다. 1형 당뇨병은, 인슐린을 생성하는 췌장의 베타세포가 T세포(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아 손상되면서 시작된다. 인체 면역계의 선봉장 격인 T세포는 베타세포를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공격한다. 본격적으로 증상이 나타난 1형 당뇨병 환자는, 혈중 포도당의 에너지 대사에 필요한 인슐린이 아주 조금 분비되거나 아예 분비되지 않는다. 현재 전 세계의 1형 당뇨병 환자는 약 2천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혈당 수치를 관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런 환자들은 고혈압, 뇌졸중, 녹내장, 신경 손상 등의 합병증에 시달린다. 이렇게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1형 당뇨병 환자에게 엄청난 희소식이 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췌장 베타세포의 특정 유전자를 억제하면 T세포의 공격을 피할 수 있고, 인슐린 분비도 원활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유전자가 제거된 베타세포는 탈분화(dedifferentiation)와 재분화(redifferentiation) 과정을 거쳐 T세포의 공격 대상에서 벗어났다. 유전자 제거가 T세포의 눈을 속이는 위장술이 되는 셈이다.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UW-Madison)의 페이자 엥긴 생체분자 화학 조교수팀은 이런 내용의 논문을 26일(현지시간) 저널 '세포 대사(Cell Metabolism)'에 발표하고, 별도의 논문 개요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했다. 연구팀은 췌장 베타세포의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IRE1-알파' 유전자에 주목했다. 당초엔 1형 당뇨병에 걸린 생쥐의 베타세포에서 이 유전자를 제거하면 병세가 악화할 거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T세포의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에 유전자를 제거하자, 처음 몇 주 동안 위험하지 않을 정도의 경미한 고혈당이 나타나다가 혈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베타세포는 전구세포(progenitor cells)로 변했다가 성숙 상태로 복원하는, 두 차례의 분화를 거쳐 정상적인 인슐린 생산자로 탈바꿈했다. 1단계로 탈분화한 베타세포에선, '이리로 와서 잡아먹어' 식의 유인 신호를 T세포에 보내던 여러 유전자의 발현도가 낮아졌고, 그 영향인지 T세포도 베타세포를 더는 문젯거리로 보지 않았다. 엥긴 교수는 "유전자를 제거하면 베타세포가 절묘한 위장술을 쓰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T세포의 공격권에 벗어난 베타세포는 재분화 과정을 거쳐 인슐린을 제대로 분비하는 성숙 세포로 돌아왔다. 이 과정을 거친 T세포는 베타세포를 공격하지 않는 속성을 1년 후까지 그대로 유지했다. 이는 사람으로 치면 40~50년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IRE1-알파 유전자를 표적으로 개발한 두 종류의 후보 1형 당뇨병 치료제에 대해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약물은 류머티즘 관절염, 루푸스병, 다발성 경화증 등의 자가면역 질환에도 효과를 낼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한다. |